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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한 기억이 없다. 지금과 같은 고용 환경에서는 나 같은 경우가 그렇게 드문 경우는 아닐 것이다. 

 정년을 보장하는 직장 자체가 잘 없고, 호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이렇다 할 직원복지가 없기 때문에 오래 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상황상 나가는 편이 맞겠다 생각하고 퇴사, 여기는 너무 아니다 생각하고 퇴사.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하게 안 좋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서 해왔던 일들에 대한 공포와 부담이 심하게 다가오면서 아예 관련된 업종 자체를 떠나게 됐다. 지금 와서 정리하면 그냥 떠난 것이지만, 막 신혼이고, 아내는 일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고 그 이후에 오랫동안 좌절하고 불안해 했다.

 이 분야는 아니라고 확신은 했지만, 딱히 다른 것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 했다. 자신이 없고, 다 못할 것 같았다. 30이 넘은 나이에 뭔가를 새로 시작해서 환영 받는 사람인지 어떨지 모르겠고, 무엇보다 잘 할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다 힘들어 보이고, 다 자신 없는 일 같았다.

 그러다 이거는 내가 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한 일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였다. 이렇다 할 기술도 없고, 체력도 없는 내게 생각나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주간타임은 대학생이나 젊은 사람들에게 밀릴 것 같아서 야간을 시작했다. 요즘의 편의점은 다루는 품목이나 서비스가 워낙 다양해서 세세한 업무를 배우는 데에 부담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해 나갔다. 그리고 생각보다 야간에 손님이 많았고, 들어오는 물건도 많았다. 30이 넘은 나이에 밤을 새는 것 자체도 힘들었는데, 일 자체도 생각보다 많았다.

 원래 계획보다 더 오랜 시간 일을 했었고, 지금은 그 일을 하고 있지 않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내가 뭔가를 할수 있다는 경험이었다. 아무 것도 못 할것 같았고, 그게 점이 두렵고 불안했었는데, 꽤 오래 일 하면서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하고, 실수도 덜 하려고 애쓰고 그런데로해왔던 것이 큰 의미였다. 

 어찌 보면 누구나 배우면 다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나 자신을 그 '누구나'의 범주에도 넣지 못한 상태였기에 평범한 사람 중에 하나이고 그만큼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임을 깨닫고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실수해서 혼난 경험, 내 실수가 뒤늦게 생각나서 마음앓이 했던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 했던 나 자신을 내가 기억하고, 그런 행동들이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보여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하기보다 그렇게 대하는 것을 스스로 편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었고, 내가 맡은 일을 해내려 하는 사람임을 새삼 깨달았다.

 간혹 편의점이나 슈퍼 같은 곳에서 무표정하거나 뭔가 귀찮아 하는 표정의 직원들을 간혹 본다. 사람마다 성격, 성향이 다르기에 누구나 친절하게 오랜시간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고 기분 불친절하다고 생각하며 기분나빠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 일이 맞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반면 친절함을 기본적으로 보여주려 하고, 그것을 당연하고 조금은 기쁘게 생각했던 나는 어떤 능력을 가진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초라한 현실, 미래에 대한 불안, 자격지심 같은 것으로 주저앉고, 무너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 상황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높은 급여,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은 사실 욕심도 없고, 방법도 잘 모르며,  현실적으로 할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을 하며 나 스스로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휘하는 것은 의미 있고, 기쁜 일이다. 

 몇일을 굶은 사람에게 밥 한공기가 소중하고 기뿐 것이듯, 30년을 넘게 찾지 못 했던 나의 장점이자 자산을 찾은 것은 내게 매우 기쁘고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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